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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북양군벌④] 장제스의 북벌과 군벌들의 항전

by 너귤맨 2021. 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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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에서는 혼란스러운 군벌들의 내전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이번화에서는 군벌들의 말로를 알아봅시다. 


 

 

장제스의 북벌군은 베이징을 향해 진격을 하는데 봉계군은 연이어 패주 합니다. 장제스가 빠른 속도로 북진하자 봉천군벌을 지원하며 중국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일본은 이를 막기 위해 제남(지난)으로 군대를 파견합니다. 이에 장제스도 북벌군을 지난으로 파견하지만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패배하고 일본군이 군대를 추가적으로 더 보내오자 북벌군은 지난에서 퇴각합니다. 북벌군은 결국 지난성을 우회해서 진격하며 베이징으로 진격합니다. 장쭤린은 북벌군을 베이징에서 막지 못할 것을 느끼고 자신의 기반 지역인 만주의 봉천(펑톈, 심양)으로 후퇴하는 기차를 탔습니다. 하지만 장쭤린이 탄 기차는 도착하기 전 폭파당하여 장쭤린은 죽고 맙니다. 이 사건을 황고둔 사건이라고 부릅니다. 

 

- 황고둔 사건 -

 

 

 

장쭤린의 암살 배후는 바로 일본군이었습니다. 일본은 이전부터 중국 대륙을 침략하고자 하는 야욕을 보이며 봉천군벌을 지원했습니다. 특히 장제스의 북벌로 봉천군벌이 밀리게 되자 일본군은 봉천군벌에게 군사적 지원을 해줄 테니 만주의 이권을 내놓아라고 얘기했지만 장쭤린은 거부하며 일본군과의 마찰이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일본군의 고토모 다이사쿠(河本大作)는 이용가치가 없어진 장쭤린을 암살하고 봉천군이 혼란에 빠진다면 관동군은 쉽게 만주에 진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큰 계획을 만들어(大作...) 실행한 것입니다. 장쭤린의 뒤를 이어 봉천군벌의 수장이 된 장쉐량(장학량)은 군벌을 제거하며 통일을 이루려고 하는 장제스와 아버지를 죽이며 중국에 간섭하려는 일본군과 사이에서 결국 장제스의 국민당에 항복하기로 결정합니다. 일본군의 협박에도 장쉐량은 결국 동북역치 통해 장제스의 밑으로 들어갑니다. 동북역치란 장쉐량이 다스리던 만주의 모든 관공서에서 위안스카이의 중화민국 때부터 내려오던 북양정부의 오색기 내리고 국민당의 청천백일만지홍기 게양한 것입니다. 

 

- 장쉐량과 장제스 -

 

 

- 봉천군벌 관공서의 깃발이 가운데의 오색기에서 오른쪽의 청천백일만지홍기로 바뀌는 사건이 동북역치 -

 

 

 

위안스카이 사후 실세를 잡으며 베이징 정부를 통치하던 북양군벌은 공식적으로는 동북역치의 사건을 마지막으로 끝나게 됩니다. 국민정부는 북벌을 완수하여 군벌들이 난립하던 중국을 통일했습니다. 장제스는 북벌을 하는 과정에서 펑위샹과 옌시산등 군벌을 흡수해 군대의 수가 비대하게 커졌지만 통일을 하고 난 이후에는 이렇게나 많은 군인들이 필요가 없어집니다. 더군다나 군벌 출신의 병사들은 언제 또 펑위샹과 옌시산의 밑으로 들어갈지도 모르는 상황 이기었기에 군대를 감축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장제스는 앞으로는 군비지출을 줄이고 예산을 공업화 등 국가를 부강하게 만들기 위해서 써야 한다고 주장하여 군대를 감축시키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장제스 휘하의 군벌들은 군대를 줄이는 것에 대해 크게 반발했고 장제스가 북벌 이전부터 장제스의 편이 되었던 중국 남부 광서성(광시성)의 군벌인 리쭝런(이종인) 반란을 일으킵니다. 장제스는 리쭝런과의 전쟁에서 힘으로 눌러 승리했지만 이 사태를 보고 다른 군벌들의 불만은 커져만 갔습니다. 

 

 

 

펑위샹도 1929년 장제스에게 돌아서며 반란을 일으킵니다. 장제스는 통일 후 아직 남아있는 장쉐량과 옌시산의 군벌 잔당들과 동맹을 맺고는 펑위샹을 포위해 고립시켜 나갑니다. 장쉐량과 옌시산은 광시군벌도 당해버렸고 펑위샹마저 당해버리면 그다음 없어질 군벌은 자기 차례가 될 것을 염려해 장제스의 편에 서기는 했지만 적극적으로 나서지는 않았습니다. 장제스는 펑위샹의 반란을 진압했고 펑위샹은 도망쳤습니다. 옌시산은 장제스에게 흡수된 군벌과 국민정부의 균형을 위해 중재를 나섰고 펑위샹과 장제스 문제는 잠시나마 소강되었습니다. 

 

- 북벌 당시 국민혁명군의 모습, Osprey <Chinese Warlord Armies 1911-1930> -

 

 

 

펑위샹은 옌시산의 지역에서 연금되었는데 아직 자신의 지역에 남아있던 군대와 연락은 계속 주고받는 상태였습니다. 그때 광서성에서 다시 장제스에 대한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장제스가 눈을 남쪽으로 돌린 사이 펑위샹은 재차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펑위샹은 장쉐량과 옌시산에게도 장제스를 무찌르자고 제안하였으나 이들은 펑위샹을 돕지도 않고 적대하지도 않는 중립적 태도를 보입니다. 장제스는 토벌군을 보내 펑위샹과 한 달간 전쟁을 했는데 결국 장제스의 승리로 반란을 진압합니다. 그런데 이번엔 펑위샹을 토벌하라고 보냈던 탕성즈가 아직 남쪽에서 반란 중이던 광서성과 연합하여 장제스에게 반란을 일으킵니다. 이때가 겨울이었는데 반란군은 추위에 못 이겨 후퇴해 이 반란도 장제스의 승리로 끝납니다. 

 

 

 

이처럼 장제스 휘하의 군벌들은 장제스에 대해 큰 불만을 계속 표출해 냈는데 1930년, 결국 옌시산 또한 장제스에게 불만을 표하며 처음에는 비교적 온건하게 장제스에게 하야를 요구했습니다. 당연히 장제스는 하야할 생각이 없었기에 옌시산은 국민당 좌파 계열의 왕징웨이(왕자오밍)와 펑위샹등 여러 군벌들과 함께 중원대전 일으킵니다. 중원대전에서는 우페이푸, 쑨촨팡등 과거 장제스에게 몰락한 군벌들까지 대거 합세해 베이핑(장제스가 북벌을 하면서 베이징의 이름을 바꿈)을 점령하고 중국 중앙부의 허난성을 점령합니다. 장제스는 중원대전에 참가하지 않은 군벌인 장쉐량에게 지원을 요청했지만 장쉐량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어느 쪽에도 가담하지 않습니다. 옌시산은 베이핑에서 장제스의 독재를 비난하면서 새로운 정부를 만들고 국내외에 이를 알립니다. 

 

- 타임지에 새로운 중국정부의 수장으로 얼굴을 내민 옌시산 -

 

 

 

베이징에서 옌시산이 새로운 국민정부를 만들고 얼마 후 장쉐량은 장제스를 지지하면서, 더 이상의 혼란을 막기 위해 군대를 움직이는 것이라고 선언하고 베이핑(베이징)으로 진군합니다. 장쉐량이 군대를 이끌고 베이핑으로 오자 옌시산과 군벌들은 베이핑에서 후퇴하여 각자 자신의 지역으로 돌아가 기회를 노리지만 일부 군벌은 장제스에게 재차 항복했고 옌시산과 펑위샹은 장제스와의 전투에서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장제스가 북벌을 완수한 이후 군대 감축을 이유로 각 지방의 군벌들이 장제스(蔣介石)에게 반기를 든 이 일련의 전쟁과 사건들을 반장(反蔣)운동 또는 반장전쟁이라고 합니다. 동북역치이후 공식적으로는 독립 정권의 군벌들이 사라졌지만 반장전쟁이 끝나면서 군벌시대의 대단원은 완전히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중원대전에서 장제스의 편을 들었던 장쉐량은 나중에 서안사건(국공합작을 요구하며 장제스를 강제 연금하는 사건)을 일으킬 만큼 군벌이 아닌 국민당의 사람이 되고, 옌시산도 다시 자신의 지역인 산시성으로 돌아와 일본군이 쳐들어 왔을 때는 일본군과 맞서며 전쟁을 하는 등, 군벌시대는 끝이 났지만 살아남은 인물들은 중일전쟁이라는 역사의 흐름으로 새롭게 들어갔습니다. 

 

- 중원대전 1년 후, 일본은 만주사변을 일으켜 만주를 침략 -

 


 

이번 지식에서는 북양군벌을 중심으로 중국의 근대사를 알아보았습니다. 이번화의 주인공이었던 북양군벌 이외에도 본문에 자주 나왔던 옌시산의 염계군벌, 펑위샹의 서북군벌, 광서성에서 반란을 일으키던 리쭝런의 계계군벌등 중국의 중남부에도 수많은 강한 군벌들이 존재했습니다. 북양군벌을 중심으로 알아보았기에 이들의 이야기는 다 못했군요. 또한 군벌의 개개인의 사연을 들어보아도 재밌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장쉐량의 경우 만주의 일인자 짱쭤린의 아들로 태어나 봉천군벌의 수장이 되었다가, 국민당에 들어가 중국과 싸우다 장제스가 대만으로 피신 가면서 데리고 가서는 수십 년간 가택연금시켜버립니다.(서안 사건 뒤끝...) 1898년 태어난 장쉐량은 시대가 바뀌면서 연금이 풀리고 미국 하와이로 건너가 2001년, 103세의 나이로 사망합니다. 살아있는 역사책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로 다양한 시대의 풍파를 보고 간 인물이죠. 

 

 

 

물론 군벌들이 싸우는 과정에서 제일 고통받았던 것은 일반 국민들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은 망국(亡國)의 시기와 개국(開國)의 시기 사이에 생기는 역사적 흐름입니다. 군벌들은 없어진 정부를 대신해서 경제, 외교 등 사실상 정부의 빈자리를 채웠습니다. 그러다 끝내 국가의 기반을 다진 장제스의 국민당으로 흡수되죠. 시대의 풍운아들이었던 북양군벌들에 대한 지식은 여기서 마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참고자료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알랭 루, 「20세기 중국사」

조관희, 중국현대사 강의

신승하, 중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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